비비안 마이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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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상에 담지 못한 내용
1. 존 말루프가 비비안 마이어의 필름을 처음 발견했을 당시는 2007년 이었고, 비비안 마이어가 사망한 시기는 2009년 이었다. 즉, 그녀는 존 말루프가 필름을 갖게 되었을 당시 살아있었다.
2. 비비안 마이어는 자주 자신의 이름을 바꾸어 가명을 사용했고, 프랑스 억양이 섞인 영어발음을 연기하여 한 때 ‘스파이’로 오해 받은 적이 있다.
3. 비비안 마이어는 생전에 광적으로 물건을 모았다. 그녀가 80년대 초반까지 모은 사진, 신문, 영수증 등은 8톤에 달한다.
저는 마이어가 보모일이 본업이었고 일 이외의 시간엔 거리에 나가 사진을 찍는것이 취미였는데, 아무도 자신을 알아채거나 관심을 주지 않아 좋았다고 알고있습니다. 뭔가 특별해 보이지 않은, 남루한 여성이 거리에서 돋보이지 않으니 카메라 속 렌즈를 통해 자신이 담고싶은 모든것을 담을 수 있어 좋았고 그것이 그녀만의 소소한 행복? 같은거였다고..그녀는 사진을 많이 찍고 필름도 많이 썻지만 정작 인화 해서 보거나 하진 않았던것 같습니다.(단지 거리에 나가 사진을 찍는것이 좋았을뿐) 그래서 다른사람들이 볼 수도 없었던 것이고.. 사진작가라거나 아티스트를 원한것이 아닌, 자신이 재능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숨겨진것이 있을 수 있다니 흥미롭네요.
그녀가 주로 사용하던 카메라는 롤라이플렉스인데, 그 중형카메라 비율이 6*6 정방형이라서 한롤에 12장 찍을수 있습니다. 즉, 150,000/12장 = 12500롤인데 이게 미친 숫자인게…하루에 한롤씩 찍었다고 해도 34년 넘게 찍었다고 볼수있고 그렇게 많은 사진의 퀄리티가 영상에 나오는 수준이라는거죠 한마디로 천재라고 밖에 말할수 없음…
1. 존 말루프가 비비안 마이어의 필름을 처음 발견했을 당시는 2007년 이었고, 비비안 마이어가 사망한 시기는 2009년 이었다. 즉, 그녀는 존 말루프가 필름을 갖게 되었을 당시 살아있었다.
2. 비비안 마이어는 자주 자신의 이름을 바꾸어 가명을 사용했고, 프랑스 억양이 섞인 영어발음을 연기하여 한 때 ‘스파이’로 오해 받은 적이 있다.
3. 비비안 마이어는 생전에 광적으로 물건을 모았다. 그녀가 80년대 초반까지 모은 사진, 신문, 영수증 등은 8톤에 달한다.
저는 마이어가 보모일이 본업이었고 일 이외의 시간엔 거리에 나가 사진을 찍는것이 취미였는데, 아무도 자신을 알아채거나 관심을 주지 않아 좋았다고 알고있습니다. 뭔가 특별해 보이지 않은, 남루한 여성이 거리에서 돋보이지 않으니 카메라 속 렌즈를 통해 자신이 담고싶은 모든것을 담을 수 있어 좋았고 그것이 그녀만의 소소한 행복? 같은거였다고..그녀는 사진을 많이 찍고 필름도 많이 썻지만 정작 인화 해서 보거나 하진 않았던것 같습니다.(단지 거리에 나가 사진을 찍는것이 좋았을뿐) 그래서 다른사람들이 볼 수도 없었던 것이고.. 사진작가라거나 아티스트를 원한것이 아닌, 자신이 재능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숨겨진것이 있을 수 있다니 흥미롭네요.
그녀가 주로 사용하던 카메라는 롤라이플렉스인데, 그 중형카메라 비율이 6*6 정방형이라서 한롤에 12장 찍을수 있습니다. 즉, 150,000/12장 = 12500롤인데 이게 미친 숫자인게…하루에 한롤씩 찍었다고 해도 34년 넘게 찍었다고 볼수있고 그렇게 많은 사진의 퀄리티가 영상에 나오는 수준이라는거죠 한마디로 천재라고 밖에 말할수 없음…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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